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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소길리의 마을 형성에 대해서는 500여 년 전 속칭 ‘좌랑못’과 ‘신산마루’ 및 ‘귀량이터’일대 사람들이 거주했고, 300여 년에는 함(咸)씨와 송씨 및 허씨 등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던 것으로 이야기하곤 함
속칭 ‘꽃동산’에는 현재 석관묘 하나가 1961년 이래 보관되어 있으며, 이 석관묘는 원래 좌랑못 남쪽에 있었던 것인데, 고려시대에 조성된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를 볼 때, 소길리 지역은 600여 년 이전부터 마을이 들어설 정도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드나들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럼에도, 소길리의 마을 형성이 기록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말부터임
17세기 말 편찬 추정의 제주 옛 지도에서 ‘우로촌(牛路村)’이 표기되어 있음
이어 1709년 편찬 『탐라지도』와 1770년대 제작 『제주삼읍도총지도』에서도 우로촌이 확인
이들 지도의 우로촌은 소길리의 옛 이름 ‘쉐길〉쉐질’ 일대에 들어섰던 마을의 이름을 한자 차용표기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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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

소길리 일대는 조선시대에 목장으로 향하는 ‘쉐질’이 있었음

이 ‘쉐질’ 일대에 마을이 들어섰기 때문에 이 마을을 ‘쉐질ᄆᆞ을〉쉐질마을’이라 부르고 한자 차용 표기로 ‘우로촌(牛路村)’ 또는 ‘우로리(牛路里)’라 함

17세기 말 「탐라도」와 1709년의 「탐라지도」, 18세기 중반의 「제주삼읍도총지도」 등에서 牛路村(우로촌:쉐질ᄆᆞ을)로 표기하고,

18세기 말의 『증보 탐라지』와 『호구총수』, 『제주읍지』 등에서 牛路里(우로리:쉐질ᄆᆞ을)로 표기

그러나, 19세기 중반의 「감시절목」에서 소길(召吉)로 표기하고 『제주군읍지』(1899)에서 召吉里(소길리)로 표기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초반에 우로리(牛路里)라는 마을 이름이 좋지 않다고 해서 좋은 뜻을 가진 한자로 바꾸어 召吉里(소길리)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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