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11월 중순경 소개되었다가 1949년 가을, 마을이 재건되었으며 설치된 경찰파견소가 있던 곳으로 1956년경까지 유지되었다. 파견소에는 경찰뿐만 아니라 보조요원으로 마을 청년 5~6명이 함께 근무하였다. 자체 경비를 위해 파견소 주위로 높은 성담을 쌓고 망루도 설치했다.
1952년 8월 10일 밤에는 식량 확보를 위해 마을을 기습한 무장대와 교전을 벌이기도 했다. 현재 남아 있는 북쪽 울타리는 파견소를 에워쌌던 성담의 일부이다.
옛적 이곳은 광장으로 동네 행사, 결혼식도 하고 마을 연극도 하고 태권도도 가르친 광장이었다. 이후 새마을 창고, 비료 등 저장했었고 현재 ‘마을만들기사업’으로 리모델링하여 쇄질영농조합법인에서 운영하는 휴식공간인 ‘소길팡’과 주민 소통공간인 ‘소길돌창고’로 변모하였다.
1948년 11월 중순경 소개되었다가 1949년 가을, 마을이 재건되었으며 설치된 경찰파견소가 있던 곳으로 1956년경까지 유지되었다. 파견소에는 경찰뿐만 아니라 보조요원으로 마을 청년 5~6명이 함께 근무하였다. 자체 경비를 위해 파견소 주위로 높은 성담을 쌓고 망루도 설치했다.
1952년 8월 10일 밤에는 식량 확보를 위해 마을을 기습한 무장대와 교전을 벌이기도 했다. 현재 남아 있는 북쪽 울타리는 파견소를 에워쌌던 성담의 일부이다.
옛적 이곳은 광장으로 동네 행사, 결혼식도 하고 마을 연극도 하고 태권도도 가르친 광장이었다. 이후 새마을 창고, 비료 등 저장했었고 현재 ‘마을만들기사업’으로 리모델링하여 쇄질영농조합법인에서 운영하는 휴식공간인 ‘소길팡’과 주민 소통공간인 ‘소길돌창고’로 변모하였다.